존경하는 박병석 국회의장님, 그리고 동료 의원님 여러분, 사랑하는 시민 여러분. 정의당 장혜영 의원입니다.저는 여러분께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힘을 합쳐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강력히 요청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차별금지법 앞에 멈춰서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에 명시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시민들의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할 명실상부한 인권기본법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차별금지법은 그 내용과 제정의 필요성과는 무관하게 이 자리에 앉아계신 의원님들을 포함한 다른 많은 정치인들에게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대답하기 까다로운 화제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대한민국은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한 선진국이 되었지만 정작 그 선진국에서 시민들의 인권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이상한 현실입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처음 정부에서 발의한 이래 지금까지 무려 11번이나 국회에서 발의되었습니다. 그러나 국회에서 14년이 흐르는 동안 단 한 번도 이 법을 심의하지 않았습니다.
국회가 차별금지법을 외면해온 핑계는 법 제정에 아직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14년간 차별금지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차근차근 넓어져왔습니다. 이제는 국민의 88.5%가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찬성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최근 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합니다.
저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사회적 합의의 부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이렇게 형성되어온 사회적 공감대를 애써 무시하면서 차별금지법을 무조건 동성애 조장법으로 낙인찍고 다른 동료 시민들을 죄인으로 몰아붙이는 일부 보수 기독교계 반대 세력의 과도한 요구에 국회가 번번이 표 계산을 하면서 굴복해온 것이 우리가 아직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에 살고있는 진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신정국가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입니다.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위는 성경책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위임한 주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국민들 가운데에는 엄연히 성소수자 시민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국회는 헌법기관으로서 성소수자 시민들을 포함한 모든 시민들의 인권보장이라는 기본적인 책무를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너무나 오랫동안 외면해왔습니다.
차별금지법을 외면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차별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차별을 하지 말자고 하는데 그 둘 사이에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설혹 100명 중 99명이 차별에 찬성한다 하더라도 민주공화국의 국회의원이라면 끝까지 부당한 차별에 반대하는 마지막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소수자의 인권 보장에 대한 비타협적 신념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헌법에 아로새겨진 존엄한 가치입니다.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견해와 열린 토론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양분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국회를 보십시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핑계 뒤에 숨어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하는 최고기구인 국회가 정작 법안에 대한 심의와 공청회 일정조차 잡지 않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토론 자체가 가로막힌다면 무슨 합의를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의힘 지도부와 의원님들께 호소 드립니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토론 그 자체를 거부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주십시오. 다른 견해가 있으시다면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토론에 임해주십시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님들께도 호소 드립니다. 차별금지법은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에서 출발한 법입니다. 인권에 대한 비타협적인 추구는 김대중 대통령의 위대한 신념입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당론으로 결정해 지금껏 선거철 정쟁에 소수자들의 인권을 폭력적으로 소비해온 아픈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일에 함께 나서주십시오.
무려 14년 동안이나 미뤄져온 이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번 국회에서 우리가 함께 제정으로 마무리합시다. 그렇게 해서 차별금지법 앞에 멈춰서있는 우리 민주주의의 심장박동을 다시 뛰게 합시다.
2021년 11월 11일
정의당 국회의원 장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