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일상을 뒤흔든 코로나19는 특히 연약한 존재들에게 가장 가혹하게 다가왔습니다.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삶을 지탱해준 지원체계가 무너졌고, 그 몫은 오롯이 개인과 가족의 책임이 되었습니다. 재난 상황일수록 더 많은 ‘사회적 연결’이 필요한 이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재앙처럼 다가왔습니다. 돌봄과 사회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심리적 재난’ 속에서 살아왔고, 여기에 감염위험을 이유로 돌봄과 지원의 공백이 더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지난 3월 제주에서 그리고 얼마 전 6월 3일은 광주에서, 안타까운 죽음들이 이어졌습니다.
2019년 7월. 31년 만에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시작되었습니다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장애등급제는 장애당사자에게 제공할 복지서비스를 판단함에 있어 오로지 신체적인 손상 정도만 저울 위에 올렸을 뿐 정작 당사자 개인의 필요와 사회적 환경은 외면해온 잘못된 제도입니다. 장애를 가진 시민들의 삶을 지원할 충분한 제도와 예산 배정 없이 한정된 자원을 행정편의적으로 배분한 결과 많은 장애인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받기 위한 신청자격이 모자라 죽어갔습니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말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진정한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를 가진 시민 역시 장애를 갖지 않은 시민들과 함께 지역사회에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실질적인 제도와 환경의 개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에서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지원서비스와 이를 위한 예산 확대가 필수적입니다.
코로나19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평등’입니다. 재난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지 않습니다. 재난은 이미 오랜 불평등으로 취약해진 사람들의 삶을 가장 먼저 공격하고, 그렇기에 재난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 불평등으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이 인간답고 존엄하게 보장될 때 비로소 우리 모두의 삶은 자유롭고 안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제가 이 자리에서 발의하는 법안은 장애를 가진 시민들만을 위한 법안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한 법안이며, 더는 이 불평등한 구조의 책임을 개인과 그 가족에게 떠넘기지 않겠다는 국가의 선언입니다.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보장법은 돌봄의 사회화를 실현하는 첫걸음입니다.
장애인활동지원 24시간 보장법에서는 최중증장애인의 삶을 하루 24시간 온전히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최중증 장애당사자들이 서비스지원인력이 없는 시간에 발생한 화재를 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거나 떨어진 호흡기를 다시 착용해줄 사람이 없어 목숨을 잃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장애당사자라 하더라도 그 실질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당사자의 생활을 위해 충분한 활동지원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현대판 고려장’으로 불리는 만65세 연령 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했습니다. 만 65세가 되는 순간 받아오던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하루아침에 급감하는 황당한 제도로 인해 많은 노인 장애당사자들이 무너진 생활을 홀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만 65세가 넘는 장애당사자들도 기존에 받아왔던 지역사회 중심의 활동지원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합리한 제도로 피해를 입은 장애당사자들의 차별 진정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의장에게 제도 개선을 권고한 만큼, 국회에서 하루 빨리 잘못된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발생 등의 재난상황에서 기존 수급대상이 아닌 장애인도 긴급지원 신청 후 곧바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였습니다. 감염병 위기상황에서 국가의 공적 책임이 발휘될 수 있도록 긴급지원 기관을 지정하고 서비스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의 가족이기 전에 한 사람의 시민입니다. 국가는 오랫동안 그 권리를 외면하거나 아주 최소한의 시혜만을 베풀어왔습니다. 이제 시혜와 동정의 복지를 넘어 장애당사자의 시민으로서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할 때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생생한 증언을 들려주실 분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른 시간에 이곳 국회에 오기까지 비장애인들에 비해 2배 이상의 시간을 들여 소중한 걸음을 해주셨습니다. 언론 앞에서 자신과 가족의 사례를 알리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가 모두를 위한 변화를 만드는 자리임을 누구보다 잘 아시기에 함께해주고 계십니다. 이어지는 사례 증언을 통해 오늘 법안의 필요성을 충분히 공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동료의원 여러분과 함께 21대 국회에서 법안이 제정될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6월 15일
정의당 국회의원 장혜영